Chapter 1. 프롤로그. 실패로부터 배워 나가라

‘보라. 찬란한 인류의 문명은 끝을 맺었건만, 그 끝에 남은 이들은 문명을 되살리려 발버둥치고 있도다.’

 - 알 수 없는 고문서. 마지막 장 일부. 멸망을 다룬 것으로 추정.


 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뱀의 꼬임에 넘어가 그 선악과를 먹고서 그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자원이 고갈되었던 그 순간에 발견된 미지의 힘은 인류에게 있어 선악과와도 같았다. 엔쓰라의 찬란한 힘은 그만큼 찬란히 빛나는 문명과 아름다운 세상을 빚어내었다. 하지만 찬란함의 대가는 모두 후대의 인류가 대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순간. 먼지만이 휘날리는 황무지. 잊힌 문명의 한복판. 낡았다는 말 따위로는 표현조차도 불가능한, 세월의 풍파를 견뎌온 마천루의 폐허. 한때 인류의 문명이 찬란히 빛났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건만, 이제는 그 무너져 내린 몸뚱이로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존재들을 감싸 안고 있을 뿐이었다.

 “헉헉헉······!”

 재앙의 한복판. 누군가가 은빛의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달리고 있었다. 벨트에 찬 단검과 권총은 다른 이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지만, 왼쪽 허리춤에 망토로 가려진 원통형의 물건은 그녀가 평범한 생존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날카롭고 위험한 폐허의 파편들이 가로막아도 그녀는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는 지금 발을 멈추면 죽는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었으니까.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 들어간 그녀의 눈앞을 거대한 벽이 가로막았다. 막다른 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벽 위로 몸을 날려, 그녀를 가로막았던 장애물을 오히려 도주의 기회로 만들었다. 그녀가 벽을 넘어가 반대편 땅에 발을 디디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무엇인가가 그녀가 넘어왔던 벽을 무너트리며 달려 나왔다.

 벽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은 그녀는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벽을 무너트리며 나타난, 두터운 갑주를 두른 거대한 짐승이 흉측한 머리에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돋아난 여덟 개의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쫓아오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짐승의 흉측한 모습에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터질 듯이 뛰는 심장 박동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꼈다.

 어느 순간,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고 생각한 그녀는 짐승에게서 도망치는 것을 멈추고는 온몸에 느껴지는 전율 속에서 외쳤다.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봐!”

 “키에에에엑!”

 그녀의 도발을 들은 짐승은 괴성을 내지르며 그녀를 향해 거대한 앞다리를 휘둘렀다. 날아드는 앞다리를 그녀는 뒤로 한 바퀴를 굴러 피하고는 오른손으로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들어 괴물의 머리를 노려 몇 발을 발사했다. 총알들이 짐승의 눈가를 스치고 지나가자 순간적으로 놀란 괴물은 주춤하며 몇 걸음 물러났다. 그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짐승이 물러난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오른손의 권총을 다시 허리춤에 집어넣으며 왼손으로 망토를 벗어던졌다. 그러자 그녀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것이 드러났다. 그것은 금속 막대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레버가 달려 있고, 역시 금속으로 이루어진 작살이 연결된 와이어가 감겨 있는 원통형의 장비였다. 그녀는 레버를 잡고 뒤로 한 번 강하게 잡아당긴 뒤 곧장 강하게 밀었다. 그러자 와이어와 연결된 작살이 엄청난 속도로 발사되어 짐승의 두갑각을 꿰뚫고 들어갔다.

 “케엑!”

 머리에 작살이 꽂힌 짐승은 깜짝 놀라며 뒤로 몇 걸음 더 물러났다.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짐승을 향해 뛰어오르며 레버를 다시금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기계장치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하며 와이어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녀는 허리에 가해질 충격을 줄이기 위해 괴물에게 뛰어오른 것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허리가 부러질 것만 같은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기계장치는 그녀의 계획대로 작동하며 곧장 짐승의 두갑각으로 그 주인을 인도해 나갔다.

 날아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최대 사거리인 오십 미터에서도 삼 초. 허나 그녀와 짐승의 거리는 고작해야 십오 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짐승의 두갑각에 부딪히기 직전 그 찰나의 시간 동안, 그녀는 공중에서 자세를 고쳐 잡아 짐승의 머리에 다리부터 착지했다. 갑자기 얼굴에 무언가가 달라붙자 적잖이 당황한 짐승은 앞다리를 들어 그녀를 붙잡으려 했다. 그것을 본 그녀는 두갑각에 흉하게 튀어 나온 뿔을 붙잡고 몸을 반 바퀴 돌려서 짐승의 어깨를 밟고 몸을 지탱했다.

 장장 쉰여덟 번의 시도 끝에, 그녀는 인류 최초로 짐승의 등에 올라타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단 한 명의 힘만으로 짐승을 사냥할 수 있는 장비’라고 하기에는 아직 어설펐으니까. 올라탄 것을 떨쳐내기 위해 미친 듯이 발버둥치는 짐승의 목덜미 위에서, 그녀는 왼손으로 허리춤에 레버를 붙잡고는 오른손으로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그 단검을 짐승이 두른 갑주의 결을 따라 꽂아 넣었다. 누군가가 본다면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평할 수준의 공격으로 보였다. 일반적인 고철 따위로 만들어진 단검이라면 멸망 이전의 합금만큼이나 단단한 짐승의 갑주를 뚫을 수는 없을 테니까.

 “케륵! 키아악!”

 하지만 이 단검은 달랐다. 짐승의 발톱이 갑주를 뚫고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의 아버지가 알려준 정보를 토대로 만든, 강력한 짐승의 앞발톱을 통째로 사용해 만든 단검이었다. 강철보다도 튼튼한 발톱으로 된 날을 지닌 단검은 짐승의 갑주를 종잇장인 마냥 꿰뚫고 들어갔다.

 팔에서 칼날이 근육을 꿰뚫는 느낌을 받은 그녀는 곧장 단검을 뽑아냈다. 단검에 찍힌 상처에서 짐승의 푸른 피가 넘쳐 나오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것에 찔리는 고통을 느끼며 갑주가 뚫린 것을 깨달은 짐승이 광분하여 오른쪽 앞다리를 들어 그녀가 올라타고 있는 자신의 목덜미를 할퀴려 하는 것을 본 그녀는 왼손으로 잡고 있던 레버를 왼쪽으로 강하게 재꼈다. 그와 동시에, 그녀와 짐승을 연결하고 있던 와이어가 분리되었다. 와이어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녀는 곧장 짐승의 등을 향해 몸을 날렸다.

 빠르고 매섭게 들어온 짐승의 강력한 공격은 그 자신의 목덜미만을 할퀴어 거대한 상처를 내 놓았다. 아슬아슬하게 짐승의 공격을 피하는 것을 성공한 그녀는 다시금 단검을 들어 짐승의 등 갑주를 강하게 내려찍었다. 다시금 근육을 꿰뚫는 느낌이 전해져 왔고, 그녀는 단검을 뽑아내어 다시 짐승의 등을 사정없이 내리치고 찢어발겼다. 단 한 번의 꿰뚫음으로 시작한 공격은 더욱 거세져 갔다.

 등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견디기 어려웠던 짐승은 상반신을 강하게 들어 올렸다.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그녀는 곧장 짐승의 등에 단검을 박고는 손잡이를 양손으로 붙들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짐승은 들어 올린 거대한 상반신을 지면에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 엄청난 속도에 그녀는 순간적으로 단검을 놓칠 뻔 했다. 만일 놓쳤다면 무사하기는 어려웠으리라.

 짐승의 발버둥이 멈추자 그녀는 단검을 뽑아들어 다시금 등을 연속해서 찔러댔다. 짐승의 튼튼한 갑주는 짐승의 발톱으로 이루어진 칼날에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깨져 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이번에야말로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너무 이른 것이었다. 분노한 짐승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고는 그것을 실행하기로 했다. 짐승은 오른쪽에 있던 작은 빌딩의 폐허를 등으로 들이받았다. 공격을 이어가느라 방심하고 있던 그녀는 짐승의 반격에 당하고야 말았다.

 “이런 씨······.”

 그 다음은, 비명. 그나마 짐승의 공격에 폐허가 큰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 그녀로써는 다행이었다. 강력한 힘으로 허공으로 튕겨져 나간 그녀는 이내 바닥에 오른쪽 어깨부터 떨어지고야 말았다. 그녀는 땅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 순간 호되게 부딪힌 오른쪽 어깨와 허리에서 끔찍한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어깨는 탈골된 것 같았고, 허리는 심하게 삔 것 같았다. 그녀는 비명을 내지르며 다시금 바닥에 쓰러졌다.

 어느새 짐승이 바닥에 떨어진 그녀를 향해 다가와 그 거대한 턱을 벌렸다. 짐승의 여덟 눈에는 모두 증오와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두려움이 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연구를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어깨와 허리에서 느껴지는 고통 속에서, 그녀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쉰여덟 번째 시도. 실패, 인건가.”

 그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짐승은 콧방귀를 뀌듯 입김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그 거대하고도 참혹한 주둥이를 벌려 그녀를 집어삼키려 했다. 그녀는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아, 곧 다가올 죽음을 겸허히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쾅 하는 거대한 폭음이 그녀의 바로 앞에서 들려왔다.

 “케에에엑!”

 끔찍한 폭음에 고막이 손상을 입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양쪽 귀에서 삐 하는 고음의 소리와, 그 고음의 소리를 뚫고도 들려오는 짐승의 포효만이 들려올 뿐. 갑자기 고막을 강타한 폭음에 깜짝 놀란 그녀는 눈을 뜨며 뒤로 물러나다가 하필이면 오른팔로 땅을 짚고는 비명을 내지르며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 순간 그녀의 뒤에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왔다.

 그는 소총을 짐승의 눈에 겨눈 채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그녀는 어깨의 고통을 억누르며, 대체 어떤 미친놈이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데 폭발물을 던진 것인지 살펴보았다. 짧은 머리의 은발, 꽤나 큰 키. 그녀는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반가움에 그를 부르려 했으나, 그가 먼저 그녀에게 욕설을 담아 소리쳤다.

 “그 옘병할 놈의 정신 차리고 당장 튀어, 제로!”

 갑자기 욕설을 들은 제로는 반가움이 싹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제로는 고통스러운 어깨를 붙잡고 신음을 흘리고는, 들어먹은 욕설에 욕설로 화답했다.

 “론. 내가 뒈지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아냐? 어깨랑 허리가 나가서 이 지랄 중인데?”

 “아아, 그러셔? 그딴 빌어 처먹을 개지랄 짓거리를 왜 쳐 하고 지랄이야!”

 “뭐? 미친년? 너 씨발 미친년한테 뒈져 볼래?”

 “뒈지고 싶은 것도, 미친 것도 맞는 것 같은데. 꼬마.”

 계속 쏟아지는 끝없는 총성 속에서도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며 물어뜯을 듯이 싸우던 두 사람의 뒤에서 조용하지만 힘이 들어간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로는 곧장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그녀를 언짢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이내 다가가서 그녀를 안아 올렸다. 갑작스럽게 허리에 무리가 가는 자세를 강제적으로 취하게 된 그녀는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악! 아, 아틀라스! 아틀라스 아저씨! 잠깐! 잠깐만! 나 허리도 나갔······. 흐어아악!”

 “비명 지를 기운은 남아 있나보군. 죽지는 않을 것 같은데. 론. 너도 작작 쏴제끼고 도망가라.”

 아틀라스라고 불린 사내는 그녀를 안아 올린 자세를 한 번 바꾸며 말했다. 자세를 고쳐 잡는 과정에서 제로의 고통은 고려사항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론은 그를 바라보지 않고, 대신 고개 한 번만 끄덕여 보이고는 눈앞에 선 짐승을 노려보며 침착하게 눈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한 발의 총알이 짐승의 눈을 스칠 때마다 짐승은 기겁하며 앞다리로 총알을 막으려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짐승의 눈은 너무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 일방적인 농락도 이제 끝날 시간이었다. 어느 순간, 론은 다른 눈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틱 하는 짧은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는 능수능란하게 탄창을 분리하고는 새 탄창을 끼우기 위해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으나 정작 탄창이 있어야 할 부분이 비어 있었다. 당황한 론은 허리춤을 만지작거리며 탄창을 찾으려 했다.

 그의 행동을 본 사냥꾼들은 론의 소총에 있던 탄약이 전부 바닥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론과 제로, 쌍둥이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희열은 희미하게, 그리고 천천히 공포로 변해 갔다. 총알이 날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짐승은 머리를 가린 앞다리를 공격의 용도로 사용하기로 결정한 듯이 앞다리를 들어올렸다.

 “저, 아틀라스? 이제 어쩌지요?”

 공포로 인해 잔뜩 얼어붙은 론이 말했다.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실한 해답을 듣고 싶었지만, 정작 질문을 받은 장본인은 그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왜 당연한 걸 묻고 있냐는 투로 대답했다.

 “튀어야지.”

 “······평지에서 부상자를 들고 달렸을 때, 저것들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확률은?”

 “허, 아저씨. 난 죽기 싫은데.”

 그에게 안겨 들어 올려 진 채 있던 제로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평지에서, 짐승을 상대로, 부상자를 든 채 달려서 도망친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그냥 도망치면 된다고 말한 것이었으니, 두 사람이 어이가 없을 만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여러 악조건에 묶인 채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계획의 완성은 다른 것에 있었다.

 순간, 짐승이 들어 올린 앞다리에 무엇인가가 날아와 박혔다. 짐승은 그것이 무엇인지 살피기보다는 앞에 무력하게 서 있던 인간들을 죽이는 것을 원했기에, 따끔하게 느껴지는 통증 정도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 행동이 짐승의 패인이 되었다. 날아와 박힌 것에서 사슬이 연결된 갈고리가 발사되어 땅을 꿰뚫었다. 갑자기 앞다리가 묶여 버린 짐승은 분노하여 포효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포효가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괴물의 얼굴에 자그마한 것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원통형이었고, 몇 개의 기계장치가 붙어 있었······.

 눈을 꿰뚫을 찬란한 섬광과 함께 거대한 폭음이 세 사람과 짐승의 고막을 강타했다. 론은 소총을 떨어트리고 귀를 막았지만, 부상을 입은 제로와 그런 그녀를 안아들고 있던 아틀라스는 귀를 막지 못하고 끔찍한 소음에 시달려야만 했다. 짐승 역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머리를 싸매고 있을 뿐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시각과 청각이 완전히 차단된 론과 아틀라스를 누군가가 붙잡고 달려야 한다는 듯이 옷자락을 끌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두 사람은 그를 따라서 달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짐승이 시각과 청각을 회복했을 때쯤에는 앞에 있던 인간들이 모두 도망친 후였다. 짐승은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더럽게 시끄럽군. 안 그런가.”

 짐승과의 격전이 있던 곳에서부터 멀리 떨어진 건물, 사냥꾼들의 쉼터로 사용되는 지하실. 그 내부에도 작게 들려오는 포효를 들은 아틀라스가 그들을 붙잡고 달렸던 늙은 사내에게 말했다. 하지만 늙은 사내는 낡은 침대에 누워 있는 제로를 내려다보며 한숨만을 내쉬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자식이 다치는 것을 즐거워할 부모는 거의 없으니까. 아틀라스는 멸망 이후에도 부, 모성애는 살아남았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아틀라스가 다가오자, 늙은 사내는 한숨을 내쉬는 것을 멈추고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 딸이 하는 미친 짓 좀 말려 주면 뭐가 덧나는가?”

 분노가 담긴 질책을 들은 아틀라스였건만, 오히려 그는 아무런 관심 없다는 듯이 평상시의 무표정한 얼굴에 무관심한 말투로 대답할 뿐이었다.

 “말리기는 했네. 안 들어서 문제였지.”

 “하? 아저씨, 안 말렸잖아! 어디서 모함을······. 아악! 잠깐! 끄아아악! 자, 잠깐! 잠깐!”

 “조용.”

 사실, 아틀라스는 부추기면 더 부추겼지, 그녀를 말린 적이 없었다. 그의 대답에 어이없어하던 제로가 짜증을 내며 반박하려 했으나 그는 그녀의 탈골된 어깨를 강하게 눌러서 바로 맞춰버리는 것으로 반박을 끊어버렸다. 그녀는 뼈와 뼈 사이의 관절이 맞아 들어가는 소리와 비명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오케스트라가 완성되는 것을 느끼며, 한층 더 아름다운 곡의 완성을 위해 더 크게 비명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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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이미지 Mr. 언디파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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